스마트폰 있는데 굳이 시계 차는 이유 : 손목 위의 우주, 시계의 역사(1)

시계가
시계가 되기까지 (1편)

명품 시계
명품 시계
기계식 시계의 비전
기계식 시계의 비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나 인기 상품의 조각투자에 성공하기 위해 분초를 곤두세운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아마 서버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사이트나 컴퓨터 화면 구석에 있는 자동 표준 시간을 참고하셨겠지요.

동그란 얼굴에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는 시계를 쳐다보며 대기하신 분들은 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태엽을 감아 쓰는 기계식 시계나 건전지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는 온라인 시계 서비스에 비해 정확하지 않거든요. 특히 기계식 시계는 온도 변화와 습기, 자성 등에 따라 분침이 느리게 흐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빈티지 시계가 264억 원(2,323만 7000스위스 프랑)를 상회하는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하고요. (Henry Graves Supercomplication, 소더비 경매에서 2014년 낙찰) 시계가 주는 가치가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겠죠? 몇 편에 걸쳐 시계가 오늘날의 시계가 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계의 역사 속에서 여러분만의 시계 투자 철학을 발견해보시길 바랍니다.

흔들리는 샹들리에에서
추시계를 발견한거야

샹들리에
샹들리에

1583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피사 성당의 샹들리에가 일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등시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진자의 질량과 관계없이 진자의 길이만 같으면 1회의 왕복 시간은 일정하다는 ‘진자의 등시성(等時性)’ 이론은 시계 역사에서 중요한 발견이 되었습니다. 1657년 네덜란드 출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는 갈릴레오의 등시성 원리를 토대로 최초의 추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추시계는 주로 집에 두고 쓰는 벽시계와 탁상시계에 적용됐어요.

1,000명이 바다에 빠진 뒤
다시 태어난 시계

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

시계는 대항해 시대에 다시 태어납니다. 16세기 이래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해운국들은 경도(傾度·longitude) 측정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지만 고전했습니다. 경도는 배가 있는 지점의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측정할 수 있는데, 추시계를 비롯한 기존의 시계는 배의 흔들림에 영향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았거든요.

경도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각"
경도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각”

모든 해운국이 그야말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중, 바다에서 1,000여 명의 인명 사고 참사를 겪은 영국이 1714년 경도법(Longitude Act)을 제정합니다. 경도법의 골자는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경도 측정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2만 파운드의 상금을 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가 1700년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2만 파운드는 오늘날 100억 원을 훌쩍 넘는 돈으로 당시 정확한 시간 측정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2만 파운드의 주인공은 30년이 넘어 등장합니다. 존 해리슨(John Harrison)은 81일간의 항해 동안에도 8.1초만 지연되는 고성능 정밀 시계 H4를 제작했어요. H4는 크기 12.5cm의 야구공만 한 회중시계로, 가지고 다니기에도 용이했습니다. 존 해리슨의 항해용 시계 덕에 경도 측정법을 손에 넣은 영국 해군은 바다를 지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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