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그녀를 치유해 준 예술

Kusama, aged around ten (1939) | © YAYOI KUSAMA
1929년, 일본 마츠모토시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선천적으로 정신 질환을 앓았고, 어린 시절부터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였습니다.
부모의 불안정한 결혼 생활과 어머니의 엄격한 억압 속에서 그림은 그녀의 유일한 도피처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여성 예술가로 활동하기 어려웠으나, 쿠사마는 현실에 굴복하지도,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생의 전환점, 조지아 오키프의 편지

Letter from Kusuma to Georgia O’Keeffe (1955) | © YAYOI KUSAMA
쿠사마 야요이는 부모의 강요로 결혼할 위기에 처했을 당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접하며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1957년, 여성 예술가로 인정받기 어려운 일본의 현실 속에서 그녀는 조지아 오키프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고, 뜻밖에 돌아온 답장은 그녀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쿠사마에게 뉴욕으로 가서 자유롭게 예술을 펼쳐보라며 조언했고, 이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험난했던 뉴욕에서의 도전

Kusama in 1960’s (1960) | © YAYOI KUSAMA
그녀는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 인종 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했던 당시 미술계에서 무명의 일본 여성 예술가가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쿠사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류 예술계에 강렬한 반항을 일으키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동성애자 결혼식 퍼포먼스, 반전 시위 등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고, 점과 패턴, 반복되는 형태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점차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예술적 도전과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시선과 차별은 끊임없이 그녀를 억압했습니다. 그럼에도 쿠사마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며 끝없는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일본 귀국과 정신병원 생활

Courtesy of Edko Films Ltd(2018) | Heather Lenz. Kusama-Infinity
당시 전쟁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그녀는 나체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그녀의 예술을 ‘수치’로 간주했고, 쿠사마는 보수적인 시선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점차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예술계는 그녀에게 더욱 냉정해졌습니다.
결국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지내며 창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쿠사마는 강박을 예술로 승화하며, 스스로 소멸하면서도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