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호박

Pumpkin (1994) | Image courtesy of Benesse Art Site Naoshima (Photo: Shigeo Anzai)
쿠사마 야요이는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와 불안을 예술로 승화한 예술가로, ‘호박’은 그 감정을 반복과 상징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쿠사마는 어린 시절 가족의 폭력을 피해 창고에 숨으며 보았던 호박의 형태에서 안정감을 느꼈으며, 반복적인 패턴과 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녀에게 호박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내면의 평온을 찾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호박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넘어서, 그녀의 불안정한 감정과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곳에서 호박은 그녀에게 안식처가 되었고, 눈앞에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호박은 현재까지도 그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강박의 조각, 축적

KUSAMA, NEW YORK ESTATE OF EVELYN HOFER IMAGES (1965) | © YAYOI KUSAMA
‘축적’은 쿠사마의 대표적인 트라우마 예술 중 하나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충격적인 기억을 작품으로 승화한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덧붙여진 원뿔형 구조물은 그녀의 강박적인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두려운 대상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쿠사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반복적인 형태로 표현하며, 그것을 견디고 직면하려는 자신의 방식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뉴욕 그린 갤러리에서 ‘축적’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수많은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품에 주목하였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선보이며, 이후 동시대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끝없는 세계, 무한 거울의 방

Yayoi Kusama’s infinity mirror rooms at the Tate gallery | © Adobe Stock #581827001
1965년, 쿠사마는 뉴욕 카스텔란 갤러리에서 ‘무한 거울의 방’을 선보이며 예술계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거울이 끝없이 반사되며 공간을 확장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무한함을 상징합니다. 쿠사마는 인류가 우주를 향해 나아가며 ‘무한’을 탐구하던 시대의 흐름을 예술로 반영했습니다.

Kusama in ‘Infinity Mirror Room – Phalli’s Field(Floor Show)’ (1965) | © YAYOI KUSAMA
전시의 주인공은 항상 ‘관객’이었던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쿠사마는 ‘무한 거울방’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의 개념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거울 속 사회, 나르시스 정원

Yayoi Kusama lying in ‘Narcissus Garden’ Venice Biennial (1966) | © YAYOI KUSAMA
1966년, 쿠사마 야요이는 제3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스 정원’이라는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주최 측의 허락 없이 이탈리아관 앞 정원에 1,500개의 은색 미러볼을 설치하고,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팝니다”라는 간판과 함께 이를 개당 2달러에 판매하며 미술의 상업주의를 비판했습니다.

Narcissus Garden installation at the Venice Biennale (1966) | © YAYOI KUSAMA
당시 미술은 값비싸고 한정된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주최 측은 쿠사마에게 판매 중단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왜 미술 작품은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처럼 팔 수 없냐?”라고 반문하며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습니다.
쿠사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미러볼을 향해 몰려드는 관객들을 보며 대중이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예술이 특정 계층 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작품에서도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데 더욱 집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