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시리즈 뱅크시 1탄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

▲ 뱅크시로 지목된 인물, 로빈 거닝햄(Robin gunningham)
최근 온라인에서는 뱅크시의 정체로 추정되는 사진이 화제입니다. 수십 년간 정체를 숨겨온 그가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받는 가운데, 유력 인물로 1973년생 로빈 거닝엄이 지목됐습니다. 그는 추적을 피하려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까지 하며 철저히 정체를 숨겨왔지만, 언론사의 추적으로 그 신비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죠.
가면이 벗겨질 위기에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미스터리가 풀려 시원하다”는 환영과 “익명성이라는 예술적 가치를 언론이 파괴했다”는 비판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요. 논란의 중심에 선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뱅크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교실 밖에서 시작된 예술

▲ 영국 브리스톨, Barton Hill Youth Centre 그래피티 작업 전경 (1990)
그의 저서 <Wall and Piece>와 과거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에서 그래피티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브리스톨은 도시 곳곳이 화려한 벽화로 가득 찬 그래피티의 중심지였는데요. 그는 잡지나 컴퓨터 대신 거리의 낙서들을 스승삼아 온몸으로 기술을 익혔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렇게 14살 무렵 담벼락에 첫 낙서화를 시작한 뱅크시는 그림에 몰두할수록 학교생활과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제도권 교육을 뒤로한 채 학교를 자퇴하며 본격적으로 거리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견한 기술, ‘스텐실’

▲ 뱅크시의 <Heavy Weaponary(1998)>. 개인소장.
학교를 떠난 뱅크시의 삶은 철저한 이중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밤마다 집을 나서는 이유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야간 도장공’ 일감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는데요. 실제로는 공권력의 감시를 피해 온 도시의 벽면을 누비며 낙서를 남기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의 급습을 피해 쓰레기 트럭 밑에 숨어 있던 그는, 차체에 구멍 뚫린 판을 대고 페인트를 뿌려 새긴 일련번호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도 저렇게 빠르게 그려야 살겠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미리 오려온 도안을 벽에 대고 스프레이를 뿌려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을 택하게 됐는데, 이 기술이 바로 훗날 그를 상징하게 된 ‘스텐실(Stencil)’ 기법입니다.
주목을 끌어낸 문제적 전시

▲ 뱅크시의 <Turf War(2003)> 전시 현장 사진.
2003년 런던의 한 창고, 뱅크시는 정체를 숨긴 채 전대미문의 전시를 열어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돼지, 소, 양의 몸에 다양한 문양의 그래피티를 그려 넣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요. 문양이 새겨진 가축들이 전시장을 누비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은 즉각 ‘동물 학대냐 예술이냐’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언론과 환경단체의 거센 비난을 불렀지만, 뱅크시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기를 깨부수는 그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하며, 그는 단숨에 미술계의 문제적인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예술의 경계를 부수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다
전시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뒤에도 뱅크시는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에만 온전히 집중해 달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익명 속에 숨겼는데요. 이러한 전략은 역설적으로 그를 현대 미술계의 독보적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칼럼은 이중생활부터 논란의 전시까지, 뱅크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초기 행보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의 주요 작품들을 시간순으로 짚어보며, 그 안에 담긴 비화들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