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작가 시리즈: 뱅크시 3탄
익명성이 만든 선명한 메시지

▲ 2003년 ITV 인터뷰 당시,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뱅크시의 모습.
우리는 보통 작품을 볼 때 작가의 배경, 의도, 이름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그 모든 정보를 제거해버리죠. 그 결과, 우리는 이미지와 그로 인해 생기는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는 “예술이 익숙한 것을 흔들고,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들고, 그안에 숨겨진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명확한 답보다 여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배척될지라도 사라지진 않는다

▲ 뱅크시의 <Love Rat(2004)>. 판화 작품(원작은 현재 소멸).
뱅크시의 작품에는 ‘쥐’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쥐를 ‘미움받고, 쫓기고, 박해받지만 조용히 살아가며, 동시에 하나의 문명을 무너뜨릴 힘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남고, 지워져도 다시 나타나는 것’을 담은 그의 활동 방식과도 닮아 있죠.
그는 “저작권은 패배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서 『Wall and Piece』에 담긴 문장이죠. 이는 작품을 소유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닿으며 계속 퍼져나가길 바라는 태도와 맞닿아 있어요 결국 그의 작업은 하나의 형태로 머무르기보다, 여러 곳에 남으며 계속 퍼져나갑니다.
예술은 파괴될 때 완성된다

▲ 뱅크시로 지목된 인물, 로빈 거닝햄(Robin gunningham)
그의 정체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추적 대상이었습니다. 그동안 로버트 델 나자,제이미 휴렛, 그리고 로빈 거닝엄 등 여러 인물들이 뱅크시로 지목되기도 했죠. 최근에는 로빈 거닝엄이라는 인물로 그 정체가 어느 정도 특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뱅크시는 별 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지켜온 익명성과 그 위에 쌓아온 방식은 여전히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는 여전히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의 익명성과 철학, 그리고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