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을 향한 응원과 끊임없는 호기심

▲ 이건용의 <Five Steps> (1975~1921).
1947년에 태어난 이건용은 다재다능한 어머니와 “원하는 걸 다 해보라”며 응원해 준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어릴 적 그는 호기심이 많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무지개를 보고 “예쁘다”고 감탄할 때, 이건용은 “왜 저렇게 무지개가 뜰까?”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어른들을 난감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예술가의 꿈을 향한 한 걸음

▲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정문 홍문관 전경.
1963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그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화가 이마동 교수의 반을 선택해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온화한 성품의 교수님이라면 자신의 파격적인 예술 실험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죠.
그는 실제로 다양한 실험적인 작업에 도전했고, 예상대로 교수님은 아침 일찍 나와 그의 독창적인 시도를 지켜보며 따뜻하게 응원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스승의 지지 덕분에 이건용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는 수많은 예술적 실험을 거치며 특히 구조주의에 대한 탐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메를로 퐁티부터 아트뉴스 모임까지

▲ 메를로 퐁티의 모습.
이건용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은 간단하죠. 거창한 이론보다 ‘우리 몸의 감각과 움직임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미술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품은 그는 대학 졸업 후 <아트뉴스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임은 해외 잡지를 함께 읽으며 현대 미술의 최신 흐름과 이론을 공부하는 열정적인 공간이었어요.
시공간의 예술, ST그룹으로의 발전

▲ 이건용의 인화 사진(1989년 나우갤러리에서 진행된 개인전 당시의 사진으로 추정)
<아트뉴스 모임>은 이후 미술 평론가 김복영의 제안을 거쳐 공간과 시간을 뜻하는 ‘ST(Space & Time) 그룹’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ST 그룹은 단순히 그림만 걸어두는 전시회 대신, 오프닝과 동시에 깊이 있는 토론회를 열며 철학적인 예술 활동을 펼쳤어요.
특히 1970년대에는 이우환 작가의 전시회를 계기로 “이 작가의 논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의 사상을 해석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난해한 해외 철학 글을 직접 번역해 책으로 만들어 나눌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출발선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신체항–71’(1971)
탄탄한 이론을 다진 이건용은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대표작 ‘신체항’을 선보이며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거대한 나무를 전시장에 그대로 놓아둔 파격적인 작품이었죠. 관람객이 인공적인 공간 안에서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마주하게 만든 그의 의도가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과 일상의 거리를 좁혀 나갔습니다. 예술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물과 몸의 움직임 모두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